기고·동정

기고 풍향계/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 - 박혜경 대표이사[동양일보- 2023. 7. 3.]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 07. 04 조회수 436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저출생을 걱정하는 시대이지만 사회 한켠에서는 환영받지 못한 채 생명이 태어나고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운 방식으로 학대를 당하다 생명을 잃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뉴스를 대할 때마다 가해자 부모를 향해서 분노가 솟구치는 걸 느낀다. 뒤이어,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남이 저지른 일이지만, 내가 미안하다, 고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미안함이다.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해 어른이라서 부끄럽고 미안하다.

자녀를 임신하고 낳고 기르는 일은 쉬운 것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죽 힘들면 ‘낳은 죄,’ ‘부모된 죄’ 라고 할까. 부모되기는 준비하고 기다린 사람에게는 비할 바 없는 축복이지만, 준비도 기대도 없다가 이런 일을 겪게 되면 이보다 더 두렵고 혼란스러운 일도 또 없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낳고 기르는 건 그만큼 중한 일이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도 성개방 흐름이 생겨나면서 성관계 경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부모에 대한 성인자녀의 의존기간이 길어지는 현상, 즉 아동기의 확장이 관찰되는 시대에 성관계 연령은 낮아지니, 그 만큼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10대나 20대 초에 출산한 경우에는 부모도 학업 등 사회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동시에 아이도 길러야 하니 혼란이 크다. 이에 사회는 피임, 연애, 부모되기, 육아 등 이 모든 단계에 관해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치관을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녀들의 성교육에 대해서 부모들의 반대가 있었다. 성에 관한 어떠한 교육도 성욕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성에 관한 가치관 교육에서 특정부분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이런 일을 겪고 있다.

이런 논란은 수습되어야 하지만 성교육은 이루어져야 한다. 야한 동영상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성관계를 묘사한 듯한 장면을 담은 온갖 영상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임신만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 성매매 등의 성착취에 10대 또는 더 어린 아이들이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로 연루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이 온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모는, 어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세상이다. 성교육 없이 사법적 처벌만 강화하는 게 내 자식이 가해자도 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대책일 리는 없다.

성교육은 단지 빨간 불에 정지해야 한다는 걸 가르치는 식의 훈련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때로는 행위규칙을 열거한 도덕교육이 필요하지만, 그 너머 성에 관한 가치관,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한다. 성에 관한 철학교육이어야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순결교육을 가치관 교육으로 보기도 하는 모양인데, 혼전성관계가 일상화되어 있는 사회에 그것을 어떤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미국에도 순결서약이 있는데 그들의 순결은 한 사람의 파트너와만 성관계를 한다는 정조(fidelity)의 개념이지 성관계없음(chastitiy)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미국의 리얼리티 쇼 중 내가 ‘DNA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10대나 20대 초의 여성이 아기를 안고 나와 생부를 밝혀 달라고 한다. 생부로 지목된 10대나 20대 남성은 자기의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30대 중반의 여성이 아이의 어머니에게 거짓말장이라며 상욕을 한다. 생부로 지목된 남성을 10대에 낳아 기른 어머니이다. 그들의 적나라한 댓거리에 이어 미리 해 둔 DNA 검사의 결과지가 개봉된다. 사회자가 “유 아 더 파더”라고 외치면 10대 남자와 그 엄마가 울면서 뛰쳐나간다. 방청객은 아이의 양육비를 책임지라며 졸지에 아빠가 된 10대 소년에게 야유를 보낸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도 닥칠까 봐 걱정된다.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말만으론 막을 수 없다. 모든 아이를 위한 복지와 서비스를 마련해야 하지만, 모든 아이가 축복 속에 태어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성교육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 학대받은 아이들에게 미안해 했던 어른의 마음으로, 제대로 된 성교육을 위해 모두 노력하자.



출처 : 동양일보 (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