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동정

기고 풍향계/고통경쟁, 우리의 밸런스 게임 - 박혜경 대표이사[동양일보- 2022. 09. 19.]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 03. 16 조회수 598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 추석이 지났다. 추석과 함께, 추석 명절의 가부장적 풍습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이러저러한 주장들도 한 바탕 펼쳐지고 지나갔다. 명절 지내기의 변화를 주장하는 의견을 앞장서서 내온 편이지만, 오랜 만에 얼굴 보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명절이면 매년 같은 고생을 감수하게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가족 간 대화의 즐거움은 관계의 시간이 쌓일수록 더 커지는 듯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런 대면과 대화로 인해 종종 관계가 더 멀어지기도 한다. 다시는 안 본다는 폭언이 쏟아지기도 한다. 가족마다 나름의 드라마가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대화한다면서 곧잘 저지르는 잘못, 즉 고통경쟁이 화를 불러온 원인일 수도 있다.

안부를 나누다가 좋지 않은 소식도 듣게 된다. 하는 일이 잘 안 되거나 몸이 아프거나 하는 등의 걱정거리다. 그저 그 이야기를 듣고 힘들겠구나, 하면 될 터인데 우리는 잘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힘들다, 또는 나는 더 힘들다, 식의 이야기로 응수하는 것이다. 한술 더 떠, 내 고통에 비하면 네가 겪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란 식의 이야기로 전진해 버리기도 한다. 용기를 주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었을지라도 듣는 쪽에서는 서운하다. 직장상사가 괴롭힌다, 일이 힘들다, 어디가 아프다, 이런 이야기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냐. 네가 정신이 나약하다, 나 때는 말이야, 식의 이야기를 뱉어버리곤 하는 건 아닌지, 기억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문제를 논할 때도 우리는 곧잘 고통 경쟁에 빠진다. 비교가 현상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소위 밸런스 게임처럼 하나가 이기면 다른 하나는 버려지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지금의 젠더 관계 문제에 접근할 때,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자의 다수를 차지한다고 말하면. 남성은 성폭력 안 당하냐고 한다. 앞의 사실 주장이 남성은 성폭력을 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아니며, 그런 주장이라면 옳지도 않다. 남성이 성희롱, 성폭력, 스토킹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그것은 남성의 인권을 훼손하고 삶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그렇다고 성폭력의 피해자 다수가 여성이며 가해자 다수가 남성이라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도 안 된다. 젠더 관계 변화를 제외한 채로는 해결책을 위한 노력의 향방을 제대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넓은 맥락으로 눈을 돌려보면, 고통경쟁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의 여성운동은 노동자 문제, 빈곤층의 문제가 더 중요하지 여성문제가 더 중요하냐는 식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성운동은 노동자운동을 분열시킨다는 식의 비판을 들었다. 여성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다른 사회문제와의 밸런스 게임처럼 인식되었던 것이다. 장애여성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장애인 인권과 여성 인권 중 어느 것이 더 우선해야 하는가 하는 논쟁을 벌이는 식이다. 기후문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다고 해서 이러한 이슈들을 주장하는 것이 빈곤문제나 인종, 젠더 문제를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필요가 없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고통은 사회문제로 바꿔 부를 수 있다. 여성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청년문제나 지역문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현실은 오히려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횡적 연대 없이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는 이 문제들 또는 이 고통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론적으로는 상호교직, 혹은 교차성이라고 부른다. 기후위기와 경쟁적 개발로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위협받는 지금 사회문제들을 인식하는 것이 밸런스 게임, 즉 양자택일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소위 우리 사회에 젠더 갈등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밸런스 게임처럼 접근하게 되면, 고통은 지속되고 관계는 더 멀어진다. 우리 사회가 이 함정을 헤쳐 나오기를 기대한다.

출처 : 동양일보 (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