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동정

기고 풍향계/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방인 - 박혜경 대표이사[동양일보- 2023. 05. 11.]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 05. 12 조회수 564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  우리 주변에 이주민들이 늘어났다. 이제 외국인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어서 낯설지 않지만 이주민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언론을 통해서 이주민들의 범죄를 적지 않게 마주한다. 언론기사는 범죄사건을 많이 다루니 기사만 가지고  이주민을 평가해선 안 된단 걸 알면서도 편견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국내 이주이긴 했어도 많은 한국 사람들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 왔다. 특히 산업화 시기에 일자리 등 기회를 찾아 이촌향도하는 사례들이 많았으므로 이주는 사회변화의 한 대목이자 많은 이들의 생애사의 한 대목이었다. 

 이동이 많아진 지금은 직장 때문에 국내의 여러 지역에서 사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 아니지만 대를 이어 정착해 살던 농촌기반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던 시기의 이주 경험은 눈물 젖은 것이었을 것이다. 서울에서의 삶이 얼마나 낯설고 당황스러웠으면, 서울을 ‘눈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라고 했을까. 그래서였을 것인데 1970년대 대중가요 중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들이 많았고 인기도 좋았다. 먹고살기 위해 몸은 도시로 떠나 왔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고향으로 향해 있다는 게 공통된 내용이었다. 1976년에 발표된 조용필의 대히트곡도 ‘돌아와요 부산행에’였으니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국내이주가 뭐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촌사람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특정지역 출신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심했던 것 같다. 전라도 같이 한때 편견의 대상이 되었던 지역 출신자들은 취직하기도 어려웠단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연유에서만은 아니었겠지만 전라도 본적지를 서울 등 타지로 옮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여전히 서울의 어떤 지역들은 특정 지역 출신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출신지역에 대한 편견 없이 사람들이 이 지역을 바라볼 것 같지 않다 여전히.   

 국내 이주도 이럴진대 해외이주의 애환은 더 깊었을 것이다. 우리는 해외이주라고 하면 1970년대 미국이민이나 서독 파견 간호사와 광부를 떠올리겠지만,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로 시작하는 고복수의 ‘타향’이라는 노래가 발표된 것이 1934년이다. 식민지가 된 조국을 떠난 설움을 “부평같은 내 신세가 나 혼자서도 기막혀서”라고 토로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 고향과 나라가 살 만했다면 왜 떠났겠는가.  

 국제적 이주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도시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은 이주의 회로가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전문가들의 이주회로로 유입국으로부터 환영받는 경로다. 국제적 유수기업들은 인재를 모시기 위한 경쟁에 나선 지 오래다. 또 하나의 회로는 생존을 위한 회로다. 먹고 살기 위한 이주로, 불법도 자행된다. 국내든 국제든 한국의 이주역사를 통틀어서 대부분의 이주는 이 생존회로를 타고 일어났다.   

 생존의 회로를 통해 이주한 이들은 유입국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불법 체류자가 되거나 저임의 노동자로 주변에서 살아간다. 노동이주에는 제한이 많기 때문에 결혼을 통해 이주한 뒤 취업해서 돈을 번다. 사기결혼이 아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외국인 입주가사근로자를 최저임금 이하로 채용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해서 비판을 받고 있다. 비판의 요지는 최저임금이하에 관한 것인데, 발의자인 조의원은 이런 조건에서 일할 사람, 고용할 사람 자유를 강변하고 있다. 주변화된 노동자들을 더욱 주변화시키는 걸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다니, 시장의 자유만 그토록 중요하다면 도대체 국가와 법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가 올 4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향후 수십 년간 국제적 이주가 고소득 국가의 인구변화를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저출산으로 노동인력 감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걱정 때문에라도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