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동정

기고 풍향계/몰라줘서 미안해 - 박혜경 대표이사[동양일보- 2022. 12. 24.]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 03. 22 조회수 512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전혀 이해되지 않다가 나중에 직간접의 경험을 통해서야 조금 깨닫게 되는 일들이 있다. 인격의 성숙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니 성숙은 인간의 영원한 숙제다.

대학에 들어가니 여러 지방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걔중에는 외롭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들이 미팅을 부지런히 다니는 걸 보고 외롭다는 건 연애를 하고 싶다는 뜻인가 보다 여겼다. 대학에서 해 보고 싶은 게 많은데 기껏 연애에 관심을 갖다니 답답해 보였다.

그들의 속사정을 다르게 헤아리게 된 건 한참 뒤에 미국살이를 겸험하고 나서였다. 그때 주변인의 위치를 아마도 처음으로 경험했던 듯하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학교 다니며 살아온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커다란 당혹감이었다. 자기를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주는 존재감 없는 존재라는 당혹. 그곳에서 만난 연구자들은 내 이야기에 형식적인 관심만 표하는 듯했다. 한국이라는, 지구상에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겠구나, 좌절스러웠다. 이웃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고아입양과 한국전쟁을 화제로 올렸다. 전쟁을 겪은 고아수출국 출신답게 가난하고 불쌍한 모습을 기대할 그들 앞에서 내 정체성은 흔들렸다.

스스로의 처지가 어렵다 보니 한국 유학생들의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다. 영어도 잘 하고 미국사회 시스템에 잘 적응해 있는 듯 보였던 그들의 다른 면이 보였다. 자기 집에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 베풀곤 하던 친구는 정작 파티 중에는 한쪽 구석에 앉아 화제에 잘 끼어들지 못 했다. 사람들을 불러서 먹이고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논문 진척이 잘 안 되는 데서 오는 불안과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서 습관처럼 벌이는 일이 란 걸 후에 깨달았다.

유학생들을 보면서 대학시절 만난 지방출신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외로움은 연애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연애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게 아닐까. 나를 포함한 서울 것들은 같은 대학에 고등학교 동창만 해도 바글바글 했으니 친구도 많고 모임도 많아 늘 바빴다. 배경도 다른 지방 출신 학생들과 가까워지고자 특별히 노력할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했다고 해도, 자기 고향 어디가 아름답다고 해도 그저 그런 시골이야기로 심드렁하게 들었을 나를 포함한 서울내기들, 그 중심주의자들의 차가운 무관심 앞에 지방 출신의 10대 말 20대 초의 자아들은 휘청거렸을 것이다.

누가 외롭다고 하면, 외로움이 뭐냐고 심심한 거냐고 물었었다. 스스로 외로움을 모르는 튼튼한 자아를 가졌나 보다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라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란 걸 먼 타향에서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 보고서야 깨달았다.

남들도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적 신체적 경험이 쌓이게 되니 이해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는 듯하다. 90이 다 되어 가는 어머니는 요즈음 아버지의 자아에 어릴 때 한국전쟁에서 겪은 공포와 상처가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얼마 전까지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이해를 하신다. 진작 알았으면 위로해 주고 다독여 줄 걸, 미안하다시며. 한국의 가부장제가 남성들 자아에 새겨진 상처 때문이라는 식의 심각한 비약과 단순화는 피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먹고 살 만해지기까지, 한국전쟁의 상처를 치료하고 다독이지 못한 대가를 곳곳에서 치러온 것은 사실이리라.

사회가 다양하게 분화하고 이동이 증가하면서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문제들을 만난다. 그만큼 내 안팎의 중심주의를, 타자성과 차별을, 타인의 상처를 성찰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연말이다. 스스로는 서울태생으로서의 중심성을 누렸지만 여성이라는 변종이자 타자로 살아온 처지이기도 하다. 올해 송년인사로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했을 이들과 이런 위로를 서로 나누고 싶다, 몰라줘서 미안해.

출처 : 동양일보 (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