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동정

기고 풍향계/이상주의도 현실주의도 모두 필요하다 - 박혜경 대표이사[동양일보- 2022. 8. 18.]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 03. 16 조회수 470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신념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과 반대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르다. 반대 의견을 참고해야 내 의견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고 그 시험을 통과하면 스스로의 의견에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나의 반대자는 나를 단련시킴으로써 내게 도움이 된다. 그러려면 의견을 개진하고 반대를 말할 수 있기에 적절한 힘의 분배구조를 조직이나 관계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역 출자출연 연구기관이 독립재단으로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반대하고 비판할 권한을 위해서이고, 이러한 권한이 있어야 정책에 관한 더 좋은 의견의 합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성평등정책은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근대적 가치에 관해 더욱 근본적으로 질문하는 이상주의적 접근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에서는 현실적인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전략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이상만 추구하는 태도는 당장 닥친 문제에 대해 대처 능력이 부족하기 쉽다. 이상주의자는 멋부리는 이야기만 하고 현실은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대하는 듯 보인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과 연결되지 않은 현실추구는 단기적으로는 성공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 가치추구와 연결되지 않은 노력은 안개 속을 질주하는 것과 같다. 인류가 직면한 지속가능성의 위기만 고려해 보아도, 이상 추구의 필요성은 공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장기적인 대책은 공동체의 이상과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성평등정책이 정책연구기관의 업무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그 필요성을 두고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성평등 가치의 필요에 공감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성평등과 같은 이상주의적인 이야기는 정책개발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회복지분야도 정책연구기관에서 수용되는 과정은 당연한 듯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역 경제 규모를 늘리고 도로를 놓는 등의 정책개발과 달리 사회복지정책이나 성평등정책은 주로 돈을 쓰는 분배정책들이다. 그런 정책들은 곳간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돈 쓸 궁리만 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경제를 일으키는 정책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충북과 같은 지역에서, 특히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가치를 향해 있는 이상주의적 노력이 정책일선에서 냉대를 당해서는 곤란하다.

몇 년 전 인구밀도가 낮은 농산간 지역의 양성평등기본계획 연구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서 해당 군에서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수립해 놓은 종합발전계획과 강하게 연계되도록 계획을 개발하고 있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지역에서는 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복지와 성평등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그 와중에 중앙정부에서 지역 읍면 단위 학생수가 적은 학교들의 통폐합안을 내놓았다. 경제논리로만 보면 학교 통폐합이 맞더라도, 학교가 통폐합되면 농촌지역 통학거리는 더 멀어지고 젊은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살기가 더 어려워진다. 설사 경제가 좋아지더라도 안전과 문화, 정주여건을 고려한 여러 정책이 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역에서의 삶은 유지되기 어렵다. 저출산을 걱정하던 정부가 지역의 인구감소를 초래하는 정책을 내놓으니 배신감이 컸다.

수도권 중심의 승자독식체계를 적어도 완화시키려는 노력과 연결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를 걱정하는 어떤 목소리도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이 이상주의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몇 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빠지지 않는 정도의 성과만을 얻을 수도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현실적인 전략과 꾸준한 노력은 말할 필요없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상을 진정으로 꿈꿔야 한다.

출처 : 동양일보(http://www.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