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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상을 보며] 가정폭력 예방, 성평등으로 시작된다-송수진 교육사업팀장[충청일보-2026.10.18]

작성자 충북여성재단 작성일 2026. 10. 19 조회수 42

송수진 충북여성재단 교육사업팀장


1983년 한국여성의전화는 우리나라 최초로 ‘아내 구타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서울 지역 기혼여성 70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2.2%가 남편에게 폭행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가정 내 폭력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남의 집 가정사’ 혹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로 치부되던 시대였다.

1991년,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리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아내 구타 피해자 구명운동’이 대규모로 전개되었고, 가정폭력을 단순히 개인의 불행이 아닌 심각한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여성단체들은 가정폭력을 더 이상 한 가정의 은폐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연대하여 해결해야 할 공적 과제로 규정하며 가정폭력 법제화 촉구 운동을 이어갔고, 마침내 1997년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렇게 가정폭력을 철폐하려는 움직임은 가족 내 성차별적 제도를 타파하는 운동과 맞닿아 있었다. 그 정점에 있었던 것이 바로 ‘호주제 폐지’다. 남성 중심의 가족관계를 규정하던 호주제에 맞서, 1999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호주제폐지운동본부를 발족하고 2000년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가 출범하면서 시민사회 전체의 연대로 확장되었다. 그 결과 2005년 2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호주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법과 제도가 바뀐 지금, 우리의 일상 속 가족은 과연 얼마나 안전하고 평등해졌을까? 얼마 전 언론에서는 추석 명절에 가정폭력 신고가 증가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올해 추석 연휴 기간 가정폭력 신고는 하루 평균 1,294건으로, 평소(908.9건) 대비 42.4% 증가하였고 지난해 대비해서도 13.0% 늘어난 수치이다.

왜 유독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가정폭력 신고가 평소보다 많아지는 것일까? 그동안 쌓였던 가족 간 갈등이 표면화되는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가족 안의 불평등한 성별 역할 분담에 있다.

특히 명절에는 평소보다 가사노동량이 크게 늘어난다. 그런데 그 증가한 노동을 가족이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여성에게만 집중시키면 어떻게 될까

한쪽은 끊임없이 노동하고 다른 한쪽은 휴식을 취하는 불균형 속에서, 전자의 노동은 ‘당연한 의무’로 취급되고 후자의 노동은 ‘도와주는 호의’로 포장될 때, 서로를 향한 불신과 갈등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가정폭력은 가부장적이고 차별적인 문화속에서 그리고 성평등하지 않은 가정내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가족 안에서 갈등을 만들어내는 불평등한 관계와 문화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법과 제도만 바뀐다고 해서 오랜 세월 체화된 가족문화가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가족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 가사와 돌봄을 함께 책임지는 문화, 갈등을 힘이나 권위가 아니라 대화와 합의로 해결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명절 역시 달라져야 한다. ‘며느리가 해야 하는 일’, ‘아들이 해야 하는 일’ 등 오래된 역할 구분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담보로 유지되는 명절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족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평등, 그것이 바로 가정폭력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폭력과 갈등 없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다.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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