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6. 05. 06 조회수 211
"여자랑 남자는 확실히 달라. 여자가 유리해."
며칠 전 친한 친구와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갔다가, 갑작스레 들은 말이었다. "뭐가?"하고 묻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여자가 성장이 빠르잖아. 확실히 빨라. 학교 들어가면 남자애들이 뒤떨어져 보이거든. 그래서 여성상위시대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나 봐."
친구의 말에 내가 다시 되물었다.
"발달이 빠르다고 여성상위시대라고 하긴 어렵지 않아? 살면서 여자라 유리하다, 여성상위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어?"
“아니, 결국 여자가 불리하지. 애를 낳잖아. 신체적으로 출산을 해야 하니까 불편하고, 불리하지.“
“그러니까. 발달이 빠른 게 살면서 여성에게 유리한 게 되려면, 취업에서도 승진에서도 노후에도 계속 유리하게 작용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반대잖아. 졸업하고 취업할 때도, 승진할 때도 임신, 출산이라는 점이 여성에게 훨씬 엄격하게 적용되고, 출산과 육아로 인한 제약도 더 많이 겪고”
"그러네. 그래서 다들 애를 안 낳는 거구나. 어쨌든 내 말은, 여자랑 남자는 다르다는 거야. 신체적으로 다르고, 출산과 관련한 것도 다르고. 남자들은 출산을 직접 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런 신체적인 다름과 불리함을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조정해줘야 성평등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뭐든 ‘똑같이’가 아니라 성별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게 될 때,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그건 성평등을 위한 노력이지, 여성상위시대는 아닌 것 같아.”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우리가 얼마나 자주 성평등에 관한 오류를 범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성평등을 "동등한 분배"에만 초점을 맞추어 생각할 때, 성평등을 위한 조치들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더불어 각자의 시작점, 상황의 차이를 고려해서 공정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불리함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실질적인 성평등을 위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종종 성평등 조치를 여성상위시대로 오해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명명의 정치학에 잘못 빠진다는 생각을 한다.
이 혼란은 평등(Equality)과 형평성(Equity)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평등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을 주는 것이라면, 형평성은 각자의 조건과 필요에 맞게 다르게 지원하는 것이다. 예컨대, 여성들은 신체적인 구조상 화장실을 남성보다 자주 가게 되고, 머무는 시간도 길다. 그러면 여성과 남성 이용 비율이 유사한 공간일 때 여성 화장실을 더 많이 배치하는 것은 성평등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제도를 통해 이런 노력을 해오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영향을 받는 정책을 설계할 때부터, 실행하고 그 성과를 평가하는 전반의 과정에 성별에 따른 차이와 불평등을 미리 고려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이나 제도가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작용하지는 않는가?’를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점검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한편, 성별영향평가와 성인지예·결산제도는 성주류화를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성별영향평가는 법령·계획·사업·홍보물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받게 되지는 않은지, 미리 확인하고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지역의 야간 보행 환경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경험될 가능성은 없는지, 대피로를 신규 설치할 때 여성과 어린아이, 노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는지와 같은 사안을 살피고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성인지예·결산은 공적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어떻게 사용될지, 성차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었는지를 확인하고 개선하는 조치이다.
용어의 생소함으로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결국 이 제도들의 목적과 기능은 단순하다. 성별로 무언가를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공정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조정, 즉 조치를 특혜로 읽을 때 발생한다. 형평성을 위한 제도적 노력이 "여성이 더 많이 받는다"는 식으로 해석될 때, 우리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성상위시대라는 말은, 형평성을 평등으로 오해할 때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오해는 비가시화되어 있지만, 여성이라면 경험한 적 있을 구조적 불평등을 더더욱 보이지 않게 만든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처음엔 "여자가 유리하다"고 했던 친구가 잠깐의 대화만으로 "결국 여자가 불리하다"는 결론에 스스로 다다랐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다. 다만 그것을 혼동하거나, 혼란스럽게 인식할 때가 있을 뿐이다. 성평등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감정이 아니라 더 정확한 이해이다.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차이를 고려하는 것이 특혜가 아니라 조정과 개선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평등을 제대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황경란_충북여성재단 연구위원으로 젠더폭력예방, 여성인권 보장, 청년정책, 여성.시민운동 관련 연구를 수행하며, 이밖에도 성평등 가치 실현을 위한 실증 기반 연구 경험을 토대로 모두가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있다.
출처 : 충청리뷰(https://www.ccreview.co.kr/)
https://www.cbwf.re.kr/home/sub.php?menukey=626&mod=view&no=1000535&page=3&scode=00000002